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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강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글로 먼저 읽는 한국사ㅣ 006. 삼국시대 ② 4세기 ★★
1. 백제는 전성기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제13대 왕인 근초고왕은 즉위하면서 적극적인 대외팽창을 시작합니다. 한반도 내 팽창: 남쪽으로 진출하여 아직 복속되지 않은 마한의 남은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였습니다. 변한 지역의 전기 가야 연맹과 우호 관계를 맺고 신라를 견제하였습니다. 동쪽으로도 진출하여 낙동강 일부와 강원도, 황해도까지 세력을 넓혔습니다. 한편, 북쪽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중국으로 진출이 좌절되자 기수를 돌려 백제의 국경을 공격해 왔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공격을 막아낸 근초고왕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직접 공격하였습니다. 평양성 마주한 고국원왕과 근초고왕은 치열한 전투 끝에 고국원왕이 전사하면서 백제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로써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시키고 한반도의 강대국으로 우뚝서며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한반도 외 팽창: 백제는 중국으로도 진출하였습니다. 산둥반도와 중국 요서 지역에 백제의 거점을 마련하였죠. 특히 중국 요서 지역으로 진출은 요동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를 견제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본 규슈 지방에도 진출하면서 왜왕에게 칠지도라는 칼을 하사하였습니다. 왕권강화: 대외 팽창의 성공적인 성과가 이루어지면서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왕위 부자 상속을 확립 하였습니다. 또 왕권의 정당성과 업적을 남기고자 고흥에게 <서기>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게 하였습니다. 제15대 왕인 침류왕 때는 강화된 왕권을 이어받았으며 중국의 동진과 우호 관계를 맺었습니다.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를 극진이 대우하면서 불교를 공인하여 중앙 집권 체제를 다졌습니다.
2. 고구려는 위기 극복
가장 먼저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태조왕 대 이후 요동으로 진출하면서 중국과 경쟁이 불가피하였습니다. 앞서 짧게 살펴보았듯이 고구려는 이 과정에서 조조의 위나라와 경쟁하였고, 특히 3세기 전반 동천왕 때 위의 장수 관구검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를 잘 극복한 고구려는 제15대 왕 미천왕이 즉위하면서 다시금 팽창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때까지 남아있던 한사군 중 하나인 낙랑군을 313년에 정복하면서 대동강 유역의 발전된 문물과 경제력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미천왕의 낙랑군 정복으로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백제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닿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구려의 목적은 중국 요동 지역으로 진출이었으므로 초반 백제와 큰 분쟁은 없었습니다. 이후 고구려 제16대 왕인 고국원왕이 즉위하면서 중국 요동 지역으로 진출을 다시 시도합니다. 그러나 당시 성장하고 있던 전연의 공격을 받아 수도를 또 빼앗기고, 미천왕의 시신이 도굴당하고 왕의 어머니와 왕족, 귀족들이 인질로 잡혀가는 수모를 겪습니다. 외교적 방법을 총동원하여 다시 수도를 찾은 고국원왕은 기수를 돌려 남쪽으로 진출을 시도합니다. 두 차례 백제를 공격했음에도 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제 근초고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와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고국원왕이 나가 막았으나,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죠. 고구려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대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전란 중에 제17대 왕으로 소수림왕이 즉위합니다. 소수림왕은 모든 대외 팽창 정책을 중단하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자 여러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 먼저 전연을 물리친 전진과 우호관계를 맺어 국경을 안정시켰고, 전진에서 보내온 승려 순도를 극진히 대접하며 불교를 수용하고 공인하였습니다. 불교를 수용한 것은 사회저 혼란과 불안감을 불심으로 극복하고 사상적으로 통일하고자였습니다. 다음으로 태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며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더불어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의 조직을 개편하고 법적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소수림왕의 정책은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어 정치와 사회가 빠르게 안정되었습니다.
3. 신라는 발전 토대 마련
신라는 제17대 내물마립간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인 중앙 집권 국가로 나아가게 됩니다. 내물마립간의 성은 김씨입니다. 이전까지 박, 석, 김이 교대로 이사금에 올랐는데, 내물마립간은 즉위 후 이사금의 칭호 대신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김씨가 독점적으로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습니다. 신라 역시 나름의 대외 팽창 정책을 펼치며 진한의 남은 작은 나라를 차례로 복속해갔습니다. 이로써 점차 영역이 확대되었습니다.
★★ 소리로 복습하는 한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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