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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 먼저 읽는 한국사ㅣ 016. 고려시대 ④ 무신 정권의 몰락 ★★
1. 무신정권 몽골의 침략에 저항하다
이의민을 제거한 후 최충헌은 약 20여 년 간 무신 최고 우두머리로 권력을 장악합니다. 이 기간 동안 명종, 신종, 희종, 고종의 4명의 왕을 교체하고 옹립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휘둘렀죠. 최충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핵심기구로 교정도감을 설치, 그 장관을 교정별감이라 한 후 스스로 교정별감이 됩니다. 최충헌의 막강한 권력은 무력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힘있고 용맹한자들 대부분이 최고 권력자인 최충헌의 부하가 됩니다. 이에 최충헌은 이 무인들을 도방에 소속시키면서 도방의 기능과 규모를 확대시킵니다. 이들이 최충헌의 사병으로 활동하면서 결국 관군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중국 대륙에서 몽골이 흥기하여 금나라를 정벌합니다. 금나라의 힘이 약화되자 금나라에 복속되어 있던 거란족이 다시 일어나 대항하다가 오히려 몽골에게 쫓기게 되었죠.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는 거란군이 몽골군을 피하다가 고려로 침입해 왔습니다. 당시는 최충헌이 집권하던 시기였는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도방의 확대로 인해 약화된 관군으로는 거란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거란군은 2년간 고려의 북쪽 경계지역 휘젓고 다니면서 고려와 수차례 전투를 치르죠. 그러던 중 거란군은 고려 동북쪽에 있는 강동성을 점령하고 이곳으로 결집합니다. 추격하던 몽골군과 지키려던 고려는 강동성에서 난생 처음 서로를 마주합니다. 고려는 몽골군과 연합하여 고립작전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결국 거란군이 굶주림에 항복하면서 성문을 열고 나오면서 고려는 거란군을 격퇴하였습니다(강동성 전투, 1218-1219).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와 몽골은 서로 형제로 여기는 '형제의 맹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상 몽골은 고려에 무리한 공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매년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 공물을 가져갔습니다.
1219년 최고권력자 최충헌이 죽고 난 후 그의 아들 최우가 권력을 이어 받습니다. 최우는 자신의 집에 정방을 설치하 인사권을 행사합니다.
그러던 중 1225년 몽골에서 저고여라는 사신을 보내옵니다. 그런데 이 저고여가 몽골로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근처에서 피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를 빌미로 몽골은 고려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231년 몽골은 저고여의 피살사건을 구실로 고려를 침략합니다. 몽골 장수 살리타가 이끈 몽골군 고려군을 가볍게 물리치고 고려 영토 깊숙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고려의 북쪽 경계 지역(북계)을 점령한 후 개경 근교에 주둔하였죠. 결국 최우는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하면서 1231년 12월 화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살리타는 북계의 여러 성을 관리하기 위해 다루가치를 설치한 후 이듬해 1월에 철수하였습니다.
몽골이 철수한 후 몽골의 요구는더욱 노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막대한 공물과 인질 요구가 지속되었고 정치적 간섭도 심화되었으며, 심지어 군사를 징발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분노한 최우는 1232년 6월 살리타가 설치했던 다루가치들을 죽인 후 7월에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해 몽골에 대한 항쟁을 시작합니다. 이에 몽골은 같은해 8월 다시 고려에 침입해왔습니다. 또다시 고려에 온 몽골 장수 살리타는 최우에게 개경으로 돌아올 것과 몽골에 조공을 요구하였죠. 그러나 최우는 강화도에서 항전의 뜻을 알립니다. 살리타는 텅빈 개경을 지나 계속해서 남쪽으로 진격합니다. 고려 전국토를 유린하며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습니다. 몽골군은 12월 처인성을 공격하였습니다. 처인성으로 몽골군이 오자 주변지역 사람들이 모두 처인성으로 피난하였는데, 이 중에 승려 김윤후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려의 군민과 몽골군이 일전을 벌이던 중 살리타가 성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게됩니다. 살리타는 일개장수가 아닌 몽골군 전체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총사령관이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몽골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2. 무신정권이 몰락하다
몽골은 2차 침입 이후에도 또다시 여섯 번이 넘게 고려를 침략하였습니다. 고려의 정부가 강화도에 있다보니, 본토에 있는 고려의 정규군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었습니다. 관군이 점점 사라지면서 치안이 불안해지고 각지에서 도적이 일어났습니다. 최우는 자신의 사병을 이용해 매일 밤 순회하며 도적을 검거하게 했는데, 이를 야별초라 합니다. 치안을 담당하던 야별초의 수가 늘어나자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었고, 이어 몽골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자들로 구성된 신의군을 더하여 삼별초를 조직합니다. 삼별초는 최씨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최우는 권력을 승계한 후 30년 간의 집권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며 1248년 자신의 아들 최항에게 권력을넘겼습니다. 최항 역시 강화도에서 몽골에 항전을 지속하면서 최고 집권자로서 권력을 유지하다가, 집권한지 8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최의에게 권력 넘겨주었죠. 최충헌의 시작된 권력의 승계가 4대까지 이어진 것이죠. 그러나 최의는 집권 후 자신의 측근만 총애하면서 다른 무인들을 차별하기 시작하며 정치적으로 소외시킵니다.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김준, 임연 등이 쿠데타를 일으켜 최의가 제거 되면서 4대 60여 년간 이어져 온 최씨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권력의 핵심이었던 최씨 집안이 사라지면서 최고 집정자의 자리르 두고 치열한 경쟁이 전개됩니다. 이 과정에서 무신들의 힘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였죠.
한편, 아직 최씨 정권이 지속되고 있을 무렵 계속되는 전쟁에 염증을 느낀 고종은 몽골과 강화를 맺고 전쟁을 끝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최씨 정권이 계속해 항전을 주장하여 실행이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김준 등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최씨 정권이 무너지자 고종은 다시 몽골과 강화를 추진하여 1259년 고종은 태자(훗날 원종)를 몽골에 보내 강화를 추진하였습니다.
태자(원종)가 몽골에 갔을 무렵 몽골 조정에서도 권력 계승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대칸 몽케가 사망하자 동생들인 쿠빌라이와 아릭부케가 각각 대칸으로 즉위하면서 내분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쿠빌라이와 아릭부테 중 어느 쪽으로 가서 강화를 맺느냐가 향후 고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을 알고 있던 태자(원종)은 그냥 고려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우연한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 모르지만 태자는 돌아가는 길에 쿠빌라이를 만나게 됩니다. 쿠빌라이는 고려의 태자가 자신에게 와서 항복한다고 생각하여 크게 기뻐하면서, 고려 국왕의 지위와 체제를 유지할 것을 약속합니다. 태자는 몽골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고려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몽골에서 쿠빌라이가 아릭부케를 물리치고 대칸이 되면서 고려는 그 지위와 정치체제, 풍속 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태자가 몽골로 떠난 사이 고종이 사망합니다. 태자의 즉위가 불안한 상황 전개된것이죠. 쿠데타를 주도한 김준이 권력을 장악하여 태자가 돌아오기 전에 태자의 동생(고종의 차남)을 즉위시키려 하였으나 몽골의 지지를 얻은 원종이 귀국하여 다음 국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원종은 곧바로 개경으로 환도를 추진하였으나, 여전히 권력은 무신 집권자에게 있었으므로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원종이 맺고 온 강화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몽골은 고려가 아직까지 몽골에 저항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개경으로 환도를 독촉하면서 공물과 인질 등의 요구를 강화하였습니다. 이에 양국의 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고, 몽골은 당시 집권자였던 김준을 몽골로 보내라 요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준은 1268년 고려에 와있던 몽골의 사신을 죽이고 나아가 원종을 폐위하려 합니다. 그러나 무신들 사이의 경쟁 속에 있던터라, 임연에게 제거 되었죠. 김준을 제거하기는 했으나 임연 역시 개경으로 환도에 반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종이 지속적으로 개경으로 돌아가고자 서두르니, 원종을 폐위해버리고 새 왕을 추대했던 것입니다. 이를 알게 된 몽골은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원종을 복위시켰습니다. 원종은 복위 된 후 몽골로 가서 폐위 사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군사 요청을 하였습니다. 임연을 중심으로 한 무신세력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죠. 임연이 죽고 뒤를 이은 임유무가 개경 환도에 끝까지 저항하였으나, 결국 제거 되면서 몽골과 강화 후 약 10여 년이 지나 1270년에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겼습니다. 최씨 정권의 무력 기반이었던 삼별초는 개경 환도에 강하게 반발하며 끝까지 몽골과 결사항전을 주장합니다. 이들은 배중손, 김통정을 중심으로 강화도에서 진도, 진도에서 제주도로 옮겨가며 몽골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여몽연합군에 의해 제주도에서 진압되었습니다.
★★ 소리로 복습하는 한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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