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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남북국시대 ① 통일 신라의 발전

by 코택유 2023.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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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 먼저 읽는 한국사 010.  남북국시대 ① 통일 신라의 발전 


 1. 남북국 시대의 의미와 신라의 시대구분

남북국 시대란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북쪽의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와 남쪽의 통일신라가 함께 공존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조선 후기의 인물은 유득공입니다. 유득공은 자신이 저술한  「발해고」 에서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발해와 통일신라가 공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 이름하였습니다. 

한편 고려시대에 저술된 「삼국사기」는 신라 왕들의 혈통을 기준으로 상대, 고대, 하대로 나눕니다. 박혁거세부터 성골의 마지막 왕인 진덕여왕까지를 상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인 태종무열이 즉위한 후 혜공왕까지 무열왕의 직계 자손이 왕위를 이어간 시기를 중대, 또다른 진골 출신의 왕들이 왕위에 오른 선덕왕 이후의 시기를 하대라고 합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 상대 신라 중대 신라 하대
박혁거세 ~ 진덕여왕 태종무열왕 ~ 혜공왕 선덕왕 ~ 경순왕
성골왕위계승 진골왕위계승
(무열왕직계자손만)
진골왕위계승
(무열왕직계 외 다양함)

 

2. 통일 신라의 발전

문무왕이 676년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는 이전보다 영토가 더욱 넓어지고 인구가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멸망한 고구려와 백제의 백성들을 안정적으로 신라에 흡수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지방 각지에서 반란이 지속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문무왕은 지방의 세력을 안정적으로 포섭하면서도 견제하기 위하여 외사정을 파견하였습니다. 삼국통일을 달성하면서 왕권도 강해졌습니다. 문무왕의 노력으로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면서 제31대 왕신문왕통일 신라의 전성기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신문왕이 즉위한 해 왕의 장인이자 진골이었던 김흠돌이 세력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면서 관련되어 있던 진골 귀족을 숙청하였고, 이를 계기로 왕권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 조직을 재정비 하였죠. 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이어 녹읍을 폐지하면서 진골 귀족의 세력 기반을 약화시켰습니다. 또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쳐 왕에 충성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늘어난 영토를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옛 고구려 지역과 백제지역, 신라 지역에 각각 3개의 주를 설치해 전국을 9개의 행정구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도 금성(오늘날의 경주)가 동남쪽에 치우쳐 있는 점을 보완하고자 5개의 작은 수도(5소경)를 설치하였습니다. 이 5소경은 지방의 정치아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문왕은 군사제도도 개편하면서 군사력을 정비하였습니다. 중앙군으로 9서당을 설치하였는데, 여기에 신라인뿐만 아니라 고구려인과 백제인도 포함하였습니다. 지방군은 앞서 살펴본 9개의 주에 1정을 설치하였는데, 북쪽 국경지대였던 한주에는 추가로 1정을 더 설치하면서 총 10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33대 왕성덕왕 때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성덕왕은 강화된 왕권과 안정되 정치를 기반으로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에 대핸 진골세력의 반발 점점 거세어졌고 제35대 왕경덕왕 때 녹읍을 부활시키면서 왕권이 약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녹읍의 부활로 진골 귀족의 세력기반이 강화되면서 왕권은 점점 더 약화하게 되었고 제36대 왕혜공왕 때는 96명의 진골들이 친왕파와 반왕파로 나뉘어 세력 다툼을 벌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혜공왕이 피살되었습니다.


★★ 소리로 복습하는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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